도시의 감성 소비, 반복되는 풍경의 유행화
서울의 봄은 교통체증과 함께 온다. 그 중심엔 어김없이 여의도 벚꽃축제가 있다. 도로는 막히고, 인파는 넘치고,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드론으로 사람의 머리를 촬영한다. 꽃을 보러 가는 건지, 사람을 보러 가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간다. 매년. 같은 장소에. 똑같은 벚꽃길에. 우리는 도대체 왜, 이 반복적인 '서울 봄의 의식'에 스스로를 들이밀고 있는 걸까?
윤중로의 기원: '정치의 섬'에서 '벚꽃의 성지'로
여의도 벚꽃길, 정확히는 윤중로라 불리는 이 길은 본래 1970년대 개발 당시 조성된 국가 기획의 결과물이었다. 근대적 도심계획의 상징이자, 정치권력이 자리 잡은 공간의 '조경 미화'의 산물. 즉, 벚꽃은 처음부터 시민을 위한 게 아니라 국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배경화면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배경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정치의 섬 여의도는 봄마다 '벚꽃의 성지'가 되었다. 이제 이곳은 정쟁의 뉴스보다 ‘카메라 들고 온 커플들’로 더 유명하다.
축제가 아니라, 군중의 재현
여의도 벚꽃축제는 축제라기보단 서울 시민의 군집 재현 행사에 가깝다. 벚꽃은 명분일 뿐,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나도 봄을 즐기고 있다는 증명
- SNS에 올릴 ‘서울 사람의 일상’ 인증
- 연인 관계 점검 or 가족 서비스 이행용 나들이
사실상 이 축제의 본질은 ‘꽃’이 아니라, ‘서울 도심에서 이 시기에 해야 하는 어떤 사회적 행위’로 자리 잡았다. 여의도에 가지 않으면 왠지 계절에 뒤처진 느낌. 거기서 사진 한 장 안 찍으면 나만 봄을 놓친 듯한 불안감.
꽃은 핑계, 배경은 필터, 우리는 피사체
특히 여의도는 도시성과 자연 이미지가 충돌하는 대표적 풍경이다. 그 배경엔 고층 건물, 강변북로, 국회의사당이 있고, 그 앞에 얌전히 핀 벚꽃길이 있다. 그 조합이 오히려 더 '서울스럽다'고 느껴진다. 감성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그 위에서 피사체가 되기를 자처한다. 꽃이 예뻐서 찍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배경 속에 있다는 것을 남기고 싶어서. 이건 자연 감상이 아니라 도시의 봄을 소유하는 일종의 상징적 소비다.
유행은 스스로 만든 감옥
여의도 벚꽃축제는 해마다 바뀌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몇 개의 포토존, 푸드트럭, 드문 문화행사. 그리고 셀카봉. 달라진 건 스마트폰의 화질 정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매년 새로운 마음으로 간다. 왜?
바로 ‘이번엔 뭔가 다를 것’이라는 착각. 혹은 ‘다들 가니까 나도’. 이건 유행의 피로감이 아니라 유행의 감옥이다. 거기 가지 않으면, 뭔가 ‘놓친 것’ 같고, SNS 피드가 허전하게 느껴진다. 이건 취향이 아니라 구조다.
여의도의 내일은, 축제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
앞으로 여의도 벚꽃축제는 더 커지기보다, 더 ‘관리되는 행사’가 될 것이다. 인파 조절, 무인 감시, 드론 방송, 유튜버와 인스타그래머의 구역 경쟁. 이 축제는 이제 서울시의 브랜드 유지 장치이자, ‘계절형 도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가 아니라, 도시가 설계한 정서적 루틴의 연례 행사. 벚꽃이 질 즈음엔 늘 언론에 ‘여의도 교통 마비’, ‘시민 불편’, ‘쓰레기 몸살’ 같은 단골 기사도 같이 핀다.
꽃은 매년 피지만, 경험은 해마다 퇴색된다
결국 여의도 벚꽃축제는 ‘봄을 맞는 방식’이 점점 피상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꽃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 꽃을 찍는 인간의 욕망이 주인공이 된 시대. 도시의 축제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사람을 활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그러니, 올해 여의도 벚꽃길을 걷게 된다면 잠깐 멈춰 생각해보자.
나는 꽃을 보러 온 걸까, 아니면
꽃을 배경으로 한 나 자신을 확인하러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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