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식 시장은 왜 아직 이 고소한 맛에 눈뜨지 못했나
카이막(Kaymak).
발음부터 이국적인 이 식품은, 터키를 비롯해 발칸 지역과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유제품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응축된 크림’이지만, 그 표현만으론 이 진득한 유혹의 매력을 다 담을 수 없다.
기원과 전통: 유제품의 실크로드
카이막은 원유(주로 소, 때로는 물소)의 윗층을 천천히 끓여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표면에 두껍고 부드러운 크림층이 형성되며, 이후 이를 걷어 냉장 숙성시켜 완성된다. 질감은 클로티드 크림과 비슷하지만, 향과 맛은 더욱 고소하고 깊다. 터키에서는 꿀, 잼, 바클라바와 곁들이며, 아침 식사의 상징이자 환대의 음식으로 여겨진다.
이 ‘천상의 크림’은 단순히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특히 발칸 지역에서는 명절이나 결혼식, 손님 접대용 특식으로 쓰이며, 중앙아시아에서는 유목민의 귀한 양식이었다. 유제품 하나가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잇는 끈 역할을 했던 셈이다.
한국 시장에서의 위상: 글쎄, 글쎄다
한국은 현재 다양한 세계 음식이 넘쳐나는 시장이다. 하지만 카이막은 이 와중에 철저히 ‘낯선 음식’으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첫째, 유통 구조의 한계다. 카이막은 냉장 유통이 필수며, 유통기한도 짧은 편이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는 현지 생산 또는 고급 수입 유통망이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아직 이를 감당할 유통 인프라가 부족하다.
둘째, 맛의 생경함이다. 한국인은 유제품을 디저트 혹은 커피 토핑 형태로 소비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식사로 섭취하거나 단독으로 즐기는 카이막은 애매한 포지션이다. 특히나 ‘기름지고 느끼한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셋째, 마케팅의 부재다. 카이막은 그 역사성과 고급성 면에서 충분히 프리미엄 브랜딩이 가능한 식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이 매력을 제대로 알리려는 시도조차 드물다. 결국 ‘아는 사람만 아는’, 매우 제한된 소비층에 머무르고 있다.
가능성은 있는가? 당연히 있다
다만, 이대로 끝날 이야기라면 글을 쓰지도 않았다.
지금의 한계는 곧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 로컬 생산 가능성
국내 유기농 목장 혹은 소규모 치즈 공방에서 카이막 스타일 제품을 자체 생산한다면, '한국식 프리미엄 크림'이라는 브랜드로 충분히 재해석 가능하다. 이미 클로티드 크림이나 리코타가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전례가 있다. - 한식과의 접목
카이막의 고소하고 진득한 맛은 인절미, 꿀떡, 콩가루 디저트류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서양식 디저트가 아닌 ‘한식 디저트와의 조합’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오히려 대중적인 입맛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 경험 중심의 푸드 콘텐츠
MZ세대는 스토리와 체험에 돈을 쓴다. ‘터키 전통 조식 체험’, ‘유목민식 차이와 카이막 브런치’ 같은 컨셉은 이미 인스타그래머블한 콘텐츠로 작동한다. 미식은 결국 경험의 축적이다.
결론: 우리 입맛,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이막은 단순한 유제품이 아니다. 이는 낯선 풍미에 대한 도전이며, 새로운 식문화로의 초대다.
한국 시장은 지금도 새로운 맛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갈망은 ‘익숙한 이국성’에만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좀 더 낯선 것, 그러나 본질적으로 깊은 맛을 가진 식품에 눈을 돌려야 한다.
카이막은 그 출발점으로 충분하다.
다만, 시장이 받아들이기 위해선 누군가 그 가치를 ‘이야기’로 풀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타이밍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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