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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써니 데이비스, 포스트의 시대를 매장한 남자

2mhan 2025. 4. 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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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라는 단어가 낡아 보이기 시작한 어느 날

한때 농구에서 ‘센터’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윌트 체임벌린, 카림 압둘자바, 하킴 올라주원, 그리고 샤킬 오닐까지. 골 밑을 지배하는 이들이 곧 게임의 흐름을 결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를 거치며 센터라는 포지션은 급속히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되기 시작한다. 스페이싱, 트랜지션, 스위치 디펜스… 시대는 느리고 무거운 센터를 밀어냈고, ‘빅맨’은 농구의 주인공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된다.

바로 그 시점에 앤써니 데이비스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는 '사라지던 존재'를 다시 끌어올리는 대신,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윙스팬은 센터, 움직임은 스몰포워드

앤써니 데이비스는 키 208cm, 윙스팬은 약 230cm. 전형적인 골 밑 수비수의 피지컬이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포인트가드였다. 때문에 슈팅, 볼 핸들링, 그리고 스크린을 읽는 감각까지 갖춘 하이브리드형 선수로 성장했다.
이건 단순한 멀티 포지션이 아니다. 그는 포지션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력화한 첫 번째 '포스트 센터'였다.

그가 보여준 ‘페인트존에서 스크린을 탈출해 3점 라인을 넘나드는 디펜스’, ‘빅맨임에도 미드레인지 페이크 후 드리블 돌파’, ‘센터임에도 스크린 후 페이딩 점퍼’는 기존의 모든 농구 문법을 교란시켰다.
데이비스는 “센터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며, 센터라는 포지션의 정체성을 스스로 박살냈다.

팀 던컨의 후계자인가, 혹은 완전히 다른 생명체인가

데이비스는 종종 팀 던컨과 비교된다. 이는 절반만 맞는 얘기다. 던컨은 ‘정석의 미학’이라면, 데이비스는 ‘탈형식의 진화’다.
던컨은 시멘트 같은 존재였다.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균형을 유지하며, 기교보다는 효율을 택했다. 반면 데이비스는 경기 흐름에 따라 포지션을 유동적으로 바꾸고, 스페이싱이 필요한 순간에는 스몰 포워드처럼 움직이며, 스위치 디펜스 시에는 가드도 마크한다.

현대 농구가 요구하는 ‘빅맨’의 조건을 그는 모두 갖추고 있다. 단지 키 큰 선수가 아닌, 전술적 완성도와 전방위 기동성을 겸비한 유일한 자원이다.

데이비스를 기점으로, 빅맨은 다시 메인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데이비스 이후 빅맨의 형태는 다시 진화하고 있다. 니콜라 요키치, 조엘 엠비드 같은 선수들이 골 밑과 외곽을 모두 소화하며 ‘플레이메이킹 센터’로 진화하는 한편,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빅맨이라는 분류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 괴물로 등장했다.
데이비스는 그 진화의 선구자이자, 물꼬를 튼 장본인이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요키치나 엠비드처럼 ‘팀의 전술적 중심’은 아니다. 그는 ‘만능 병기’지만, 그 무기를 운용하는 지휘관의 역할은 르브론이나 감독이 도맡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데이비스의 플레이는 화려하면서도 중심성이 떨어지는 모순을 안고 있다. 뛰어난 선수지만, 전술의 엔진이라기보다는 치명적인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론: ‘포지션 없는 시대’의 가장 완성도 높은 해답

현대 농구는 점점 포지션이라는 개념을 지우고 있다. 가드도 리바운드를 따고, 센터도 3점을 쏜다. 그 변화의 핵심에는 앤써니 데이비스 같은 선수가 있었다.
그는 빅맨의 종말을 선언하지 않았다. 오히려 빅맨이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방향을 몸소 보여줬다. 문제는 단 하나, 그가 얼마나 자주 건강하게 뛰느냐는 것이다.

결국 데이비스는 ‘재능과 진화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라는 그림자를 함께 안고 있다. 만약 그가 건강을 유지하며 시즌 내내 중심을 잡는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포스트 시대의 전성기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