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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맨의 재해석, 앤써니 데이비스의 성장기

2mhan 2025. 4.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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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길었던 팔, 그리고 꿈도 없이 길었던 성장통

앤써니 데이비스는 원래부터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시카고 남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퍼스펙티브 차터(Perspective Charter) 고등학교 출신. 농구 명문과는 거리가 먼 이곳에서 그는 무명의 포인트가드로 평범한 고교 시절을 보냈다. 키는 크지 않았고, 체격도 왜소했다. 당시 그의 별명은 “그냥 키 큰 애”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사이,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불과 18개월 사이에 18cm 이상 키가 자랐고, 윙스팬은 2m30cm에 육박했다. 포인트가드로 쌓은 볼 핸들링과 시야는 그대로 유지된 채, 그는 돌연 ‘기형적인 운동능력을 가진 빅맨’으로 변모했다. 이것이 바로 앤써니 데이비스라는 괴물의 탄생이다.

켄터키 대학, 그리고 1년 만의 NBA 도약

존 칼리파리가 이끄는 켄터키 대학교는 NCAA에서 ‘NBA 인큐베이터’로 유명하다. 데이비스는 2011년 켄터키에 입학하자마자 스타가 됐다. 평균 14.2점, 10.4리바운드, 4.7블록이라는 경이적인 기록. 특히 블록 능력은 NCAA 역사에 남을 수준이었다. 데이비스는 대학 무대에서 단 1년을 뛰고 2012년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뉴올리언스 호니츠(현 펠리컨스)에 지명된다.

이때만 해도 팬들은 “또 하나의 평범한 유망주겠지”라고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NBA의 ‘규칙’을 바꿔놓을 존재인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펠리컨스 시절, 괴물은 진화하고 있었다

NBA 초반 몇 시즌 동안 데이비스는 ‘공룡’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괴물 같은 활약을 펼쳤다. 2014-15 시즌에는 평균 24.4점, 10.2리바운드, 2.9블록. 데뷔 3년 차에 이미 리그 탑 10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팀이었다. 뉴올리언스는 데이비스의 기량과는 정반대로, 운영과 로스터 구성에 실패하며 매 시즌 플레이오프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지옥의 탱킹 시즌’을 끝낸 뒤에도 도약은 없었다. 데이비스는 결국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이 결단은 그의 커리어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르브론과의 동행, 그리고 챔피언이라는 이름

2019년, 데이비스는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된다. 이적 후 첫 시즌, 그는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2020 NBA 파이널 우승을 이끈다. 코로나로 인한 ‘버블’ 시즌이라는 특수성이 있었지만, 데이비스는 포스트시즌 내내 레이커스의 공격과 수비를 이끌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파이널에서 마이애미를 상대로 보여준 림 프로텍터로서의 능력은 팀 던컨 이후 가장 완성도 높은 수비형 빅맨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 해, 데이비스는 챔피언이라는 이름을 손에 넣으며 ‘커리어 검증’이라는 마지막 문을 열었다.

하지만, 몸은 배신했다

이후 몇 년은 데이비스에게 ‘시험’의 시간이었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출전 경기 수는 줄어들었고, ‘유리몸’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슈퍼스타라면 피할 수 없는 비판이었지만, 문제는 그 비판이 근거 없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부상 속에서도 데이비스는 여전히 통계를 보면 압도적이다. 2022-23 시즌, 건강할 때 그는 여전히 평균 26.1점, 12.5리바운드, 2블록 이상의 수치를 기록하며 ‘완전체’ 빅맨의 위용을 보여줬다. 다만 “건강할 때”라는 전제가 그의 가치를 늘 가려왔다.

그가 남긴 유산, 그리고 지금

앤써니 데이비스는 전통적인 센터의 틀을 깨고, 스트레치 4를 넘어 하이브리드 5의 길을 연 인물이다. 블록왕이면서 스틸 능력도 뛰어나고, 포스트업과 페리미터 슈팅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선수. 그는 현재까지도 레이커스의 중심이자, 현대 농구에서 ‘모범 답안 같은 빅맨’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만약 건강했다면?’이라는 물음표가 따라붙는 선수이기도 하다. 즉, 앤써니 데이비스는 실력과 기대, 그리고 불안정성까지 함께 품은 채 NBA라는 무대에서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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